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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망록’책자 펴낸 조선대 미화원 기세일씨

기사입력 2005.03.10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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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담양 고서초등학교 졸업이 최종 학력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적어두는 책자 의미

    대학에서 청소일을 하는 7순 미화원이 ‘비망록’ 책자를 펴내 화제다.
    학교에서 청소를 하는 틈틈이 교수나 학생들이 버린 책을 한 권 한 권 읽으면서 좋은 대목을 적어놓은 원고를 모아 펴낸 이 책의 주인공은 기세일씨(70·광주광역시 남구 진월동 319-11).
    “제가 책을 낼 것이라고는 꿈도 꾸지 못했는 데, 감히 용기를 냈습니다. 이렇게 좋은 책을 만들고 보니 겁이 나기도 하고 더없이 기쁩니다.”
    그는 광산구 임곡에서 태어나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담양 고서초등학교를 겨우 마쳤다.
    학교 다닐 때도 농사일을 돕느라 일년이면 결석을 몇 달씩 했고 때문에 화장실 청소를 도맡아 했다. 그렇지만 “내가 아는 만큼 남을 가르치겠다”는 생각에서 10여년 동안 고서에서 야학을 운영했다. 그 때부터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고, 낙서하기를 즐겼다.

    자동차 시트제조업을 하다가 용역회사를 통해 1992년부터 조선대에 근무를 시작했다.
    도서관에서 8년 동안 근무했고 지금은 치과대학에서 일하고 있다.
    처음에는 라디오를 들으며 좋은 대목을 적다가 청소하면서 수집한 책을 접하면서 명사, 학자들의 명언들을 옮겨 적기 시작했다.
    복사지 이면에 자를 대고 일일이 줄을 쳐서 플러스펜으로 적었다.
    책, 복사지, 펜은 모두 주워서 재활용했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혹은 토요일이나 일요일에도 학교에 나와 책을 읽고 옮겨 적었다.
    그렇게 작성한 원고가 어언 3천매 분량이 되었다. 처음에는 자녀들과 지인들에게 나눠주기 위해 복사본을 만들 계획이었으나 이재민 치과대학 교학팀장의 권유로 책을 엮게 되었다.
    표지 그림은 한국화가인 이팀장이 직접 그려주었다.

    책 제목은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적어두는 책자’라는 의미에서 ‘비망록’이라고 지었다.
    조목조목 가슴에 와 닿는 글귀들을 상식, 금전, 우정과 건강, 신앙, 삶과 도덕, 애정, 행복 등 7개 장으로 나눠 묶었다.
    책은 300권을 찍어 지난 3월 8일 열린 칠순연에서 가족친지들에게 나눠주었다.
    3남2녀 자녀들은 “아버지가 책을 좋아하시는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책자로 만들 줄은 몰랐다”며 반겼다. 큰 아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세무공무원으로 근무하다 지금은 의정부에서 세무사 사무실을 차려 동생들과 함께 운영하고 있다. 강동원 치과대학장은 칠순연 자리에서 “자녀들에게 많은 재산을 남겨주는 것 보다 이 책 한 권이 훨씬 값진 보물이다”고 격려했다.
    그 동안 읽은 책을 3박스째 묶어놓았다는 그가 가장 감명깊게 읽은 책으로 박세길씨의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를 꼽았다.
    “제주 4·3사태부터 10·26까지 다룬 그 책을 읽고 왜 우리나라는 이렇게 비참하게 외세에 빌붙어서 살아왔는가, 우리나라의 진정한 자주독립은 언제쯤 이룩될 것인가 분노를 느꼈습니다.”

    1936년생인 그는 올해 일흔이 되었다. 그렇지만 아직 병원 침대에 누워본 적이 한번도 없을만큼 타고난 건강으로 오늘도 열심히 교정 구석구석을 청소하고 있다.
    “내 나이 70이 되어서도 일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큰 즐거움입니다. 기왕에 연필을 손에 잡은만큼 언젠가는 제가 책을 직접 쓰고 싶습니다.”
    비망록에는 그가 직접 쓴 글귀도 몇 대목 수록되어 있다. 그 중 ‘당신’이라는 글에서는 아내에 대한 속 깊은 사랑이 뭉클 묻어난다.

    “오늘도 당신께 미안한 마음뿐입니다. 당신과 나, 천상에 연이 있어 우리 서로 만났으나, 따뜻한 말, 당신의 언 손 한번 꼬옥 잡아주지 못한 나에게 항상 맑고 밝은 미소로 날 따라주었던 당신. 항상 내 깊은 한곳에는 감사의 마음이었습니다. 이제는 고마우신 당신에게 말 한마디를 해야 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정말 내 사랑 당신을 사랑합니다.”
    ※기세일씨 연락처 (017)641-3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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