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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신고공화국'

기사입력 2006.02.28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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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무원에 적용한 예산낭비 신고포상금 제도 올해부터 전 국민에게 확대 등 신고 정신 부추겨
     
    대한민국이 '신고 열풍'에 휩싸여 있다. 이른바 신고공화국이 된 셈이다. 선거 관련 신고 뿐 아니라 사회 각 분야에서 '신고 광풍'이 몰아치고 있어 요즘 세태를 씁쓸한 눈으로 읽어 볼 수 있다.

    식당을 운영하는 김모(43)씨는 구청에서 날아온 30만원 과태료 통지서를 받아들고 깜짝 놀랐다. 얼마 전 손님에게 후식용 커피를 종이컵에 담아 건네주는 그의 모습이 ‘몰래카메라’에 찍혀, 일회용품을 무료제공한 혐의로 구청에 신고된 것이다.

    “가게 안에 미니자판기를 설치해, 손님들이 직접 커피를 빼 마시도록 셀프 서비스를 하고 있는데, 한 손님이 ‘음식 맛 좋다’고 칭찬하며 ‘커피를 갖다 달라’고 하기에 제 손으로 커피를 뽑아준 게 화근이었죠.”

    김씨는 포상금 7만원을 타기 위한 파파라치의 함정에 걸린 것이다. “식당 주인이 종이컵에 커피를 주면 단속되고, 손님이 직접 가져가면 문제없다는 것부터가 코미디”라고 김씨는 푸념했다.

    ◆食파라치, 土파라치, 稅파라치…

    대한민국은 ‘신고(申告) 공화국’이다. 정부 각 부처나 지방자치단체들이 경쟁적으로 신고포상금제를 신설하거나, 최고 지급액을 상향조정하면서 포상금을 ‘미끼’로 한 정책이 거의 전 분야로 확산되고 있다.

    현재 중앙정부, 지방정부가 도입한 신고포상금 제도는 60여개에 달한다.〈표 참조〉 현 정부 들어서만 전체 포상금제도의 절반인 30여개가 신설될 정도로 신고포상금제는 갈수록 각광받는 추세다.

    최근 사례만 보아도, 지난 23일 국회 재경위 조세심사소위는 국세체납자가 숨겨놓은 재산을 신고하는 이에게 최고 1억원의 포상금을 지급하는 국세기본법 개정안(정부제출)을 가결했다. 기획예산처는 그간 공무원에게 적용한 예산낭비 신고포상금 제도를 올해부터 전 국민에게 확대하고, 포상금도 2000만원에서 3900만원으로 높였다.

    내달부터는 수도권 등 토지거래허가구역에서 허가받은 용도와 다르게 땅을 이용하는 토지소유자를 신고하면 50만원의 포상금을 주는 이른바 ‘토(土)파라치’도 실시된다. 법무부는 오는 5월 31일 전국 지방선거 운동부터 불법선거 사범을 신고한 이에게 지급하는 포상금을 현재 최고 5000만원에서 5억원으로 올린다는 방침이다.

    포상금을 노린 신고자들을 지칭하는 ‘식파라치’(불량·위해식품) ‘쓰파라치’(쓰레기 무단투기) ‘봉파라치’(1회용 비닐봉투) ‘노파라치’(노래방 불법영업) ‘세파라치’(탈세제보) ‘선파라치’(불법선거운동) 등 신조어도 대거 양산됐다.

    ◆파파라치 양성 학원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각종 신고포상금 제도를 늘려가자, ‘파파라치’로 돈 벌려는 이들을 겨냥한 각종 인터넷 사이트, 전문 학원까지 등장하는 상황이다. 서울 삼성동에서 파파라치를 양성하는 M학원을 운영 중인 문성옥(57)씨는 35만원의 수강료를 받고, 포상금을 받기 위한 이론과 몰래카메라 촬영 등의 실무를 하루 코스로 교육하고 있다.

    문씨는 “노련한 파파라치가 되면 신고포상금으로 일당 50만원, 월 1000만원 이상을 거뜬히 벌 수 있다”며 “강습료가 비싸지 않다”고 주장한다. 문씨는 수강생들에게 “포상금을 받기 위한 물증확보를 위해 업주, 종업원의 얼굴과 가게상호가 화면에 나오게끔 몰래카메라를 찍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수퍼마켓에서 비닐봉투 값을 안 받았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영수증도 꼭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문씨는 “길가에 널린 게 돈벌이”라며 “수퍼마켓 등에서 물건을 살 때 그냥 비닐봉투에 싸주는 경우가 많은데, 그걸 비디오로 찍으면 건당 2만~50만원까지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동네약국도 파파라치의 타깃이다. 문 원장은 기자에게 광화문의 한 약국에 들어가 드링크류 한 박스를 비닐봉투에 싸들고 나오는 모습을 시범으로 보여 줬다. 물론 약국은 비닐봉투 값을 받지 않았다. 문 원장이 어깨에 멘 몰래카메라에 그 모든 과정이 녹화됐다.

    ◆시민감시냐, 행정편의주의냐

    정부가 각 분야 파파라치들에게 포상금을 지급하는 것은 공무원이 접근하기 힘든 행정의 사각지대에 시민고발 정신을 도입한다는 취지다. 그러나 부작용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남의 잘못을 고발하기 위해 몰래카메라를 활용하는 시민감시 풍조가 확산될 뿐 아니라, 정부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포기하는 행정편의주의 발상이라는 것이다.

    이원희 한경대 교수는 “신고포상금제도가 나름의 순기능이 있지만, 정부가 행정목적을 달성하는 꼭두각시 같은 수단으로 시민을 이용하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연세대 김호기 교수(사회학)는 “정부가 금전만능주의를 이용해 정책홍보 효과만 쉽게 거두려는 측면이 강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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