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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찬 총리 수첩 '공포'

기사입력 2005.05.05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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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디어·수치 빼곡 … 청와대 갈때도 들고가
    李총리 수첩 꺼내면 장관들 받아쓰기 준비 '새풍속도'

    3일 청와대 국무회의. 이해찬 국무총리가 와이셔츠 주머니에서 작은 수첩을 꺼내들었다. 그러자 대다수 장관들이 메모 준비를 했다.

    이 총리가 여중생 집단구타 사망 사건을 거론하며 학교폭력을 뿌리뽑을 것을 지시했다. 장관들이 받아적었다. 이 총리가 수첩을 꺼내면 장관들이 메모 준비를 하는 게 국무회의의 새로운 풍속도가 됐다.

    얼마 전 국무회의에서는 한 장관이 이 총리에게 혼쭐이 났다. 장관이 정책을 설명하고 있었다. 이 총리는 마음에 안 들었던지 수첩을 꺼냈다. 예산 등을 인용하면서 허점을 지적했다. 이 장관도 이 총리의 지적을 받아적지 않을 수 없었다. 한 참석자는 “해당 장관이 상당히 당황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총리는 1주일이면 1~2차례 노무현(盧武鉉) 대통령과 만난다. 이 때도 보고서는 없다. 수첩만이 있을 뿐이다.

    여기에는 각종 정책 아이디어, 일일이 기억하지 못하는 수치, 회의에서 얘기해야 할 내용 등이 빼곡히 적혀있다. 국가정보원 등으로부터 받은 중요 정보도 담겨있다. 올 들어 이 총리가 임명 제청에 관여했던 이기준 전 교육부총리, 김진표 교육부총리, 한덕수 경제부총리 등의 이름은 모두 이 수첩에 들어있었다고 한 측근은 귀띔했다.

    4월 23일 인도네시아에서 김영남 북한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만났을 때도 수첩은 등장했다. 이 총리가 사전에 남북당국 간 회담 재개의 필요성을 4가지 항목으로 정리해갔다. 광복 60주년기념 공동사업, 북한 조류독감 지원 등을 위해 남북이 만나야 한다는 것이다. 이 총리는 당일 기자들과 식사를 하면서 수첩을 펴보이기도 했다.

    그는 “기자들이 이 수첩만 가지면 한 달은 기사쓸 수 있을 것”이라고 농담을 했다.

    그렇다고 수첩에 꼭 무거운 주제만 적어놓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이 총리는 “이를 열심히 닦자는 얘기도 메모돼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해찬 수첩’은 요즘 일반 문구점에서는 잘 팔지도 않는 구식이다. 가로 6㎝, 세로 10㎝ 정도된다. 분식집 같은 데서 외상 장부용으로 쓰이고 있는 것과 똑같다. 지방의 문구 공장에서 100권 들이 상자로 주문해 쓴다.

    1989년 초선 의원 시절부터 쓰기 시작한 이 수첩은 벌써 300권이 다 돼간다. 총리 취임(2004년 6월) 후에는 각종 회의를 1000번도 넘게 하느라 20권을 썼다. 이 총리는 은퇴 후 자서전을 쓸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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