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사람들’논란 끝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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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그때 그사람들’논란 끝 개봉

무거운 소재 속엔 코믹·냉소가… 

  명예훼손과 표현의 자유라는 거대 담론 사이에서 논란을 빚어낸 영화 ‘그때 그 사람들’이 드디어 일반 관객을 찾아간다.
‘눈물’ ‘처녀들의 저녁식사’ ‘바람난 가족’ 등에서 녹록치 않은 연출력과 세상에 대한 비딱한 시선을 토해냈던 작가주의 감독 임상수는 이번 영화에서도 “삶이란 원래 블랙코미디”라며 어깨에 힘을 뺐다.
  한국 현대사의 아주 중요한 날로 기록될 1979년 10월26일 하룻밤의 이야기를 다룬 이 영화는 소재의 묵직함에 아랑곳없이 일단 가볍게 시작한다. 첫장면 김윤아의 내레이션 “박정희,그가 어느날 총에 맞아 죽었답니다”는 명랑을 넘어 맹랑하다.
  중앙정보부 의전과장이자 김부장(백윤식)의 오른팔 주과장(한석규). 그가 하는 일은 주로 대통령의 연회에 자리를 할 젊은 여자들을 ‘모셔’ 오는 일이다. 이날도 ‘할아버지(박대통령)’가 좋아하는 ‘엔카 잘 부르는 가수,수봉이’와 자칭 ‘쿨한 년’이라는 여대생을 차에 태워 만찬장으로 향한다.
  헬기에 자리가 없다고 경호실장에게 밀린 중앙정보부 김부장.
  만찬이 시작되자 오늘따라 더욱 안하무인격인 경호실장의 태도에 비위가 상한다.
  그는 슬며시 방을 나와 주과장과 자신의 경호책임자 민대령에게 말한다.
 “오늘이다.내가 해치운다. 민주주의를 위해 작열하는 마음으로 같이 가는거야. 그게 사나이의 길이야.” 그리고 명령에 따라 영문도 모른 채 소집된 네 명의 부하들은 “까라면 까야지…. 한몫 잡을거래잖아”하며 총소리를 기다린다.
  영화는 앞뒤 다큐멘터리를 빼고는 기본적으로 냉소적인 블랙 코미디. 한 나라의 명운이 걸린 역사에 카메라를 들이대면서도 감독은 코믹한 시선으로 일관한다.
10·26이 미치는 사회적 파장은 컸지만 영화속 김부장은 그리 치밀하지 못하다. 오래전부터 거사를 준비한게 아니라 그날 ‘욱∼’하는 심정에 우발적으로 방아쇠를 당긴다.
만찬장에서 총을 쏘다말고 총알이 떨어지자 밖으로 뛰쳐나와 “총 어딨어, 총 가져와∼”하고 허둥대는 장면이나, 밖에서 총소리를 기다리는 부하들의 우왕좌왕하는 모습은 실소를 자아낸다.
대통령 유고시 대책을 논의하는 국무위원들의 모습도 오합지졸에 다름아니다.
  영화는 역사를 해석하거나 평가하지 않는다. 그날 밤 정말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 말해주지도 않는다. 그러나 영화는 그 자체로 역사적 리얼리즘 재연이라는 무게에 짓눌리지 않고 독창적인 아이디어와 풍자로 사회비판을 일궈냈다. 사건이 벌어진 현장의 복도를 무심한 듯 훑고 지나가며 그때 사람들의 모습을 일일이 비춰주는 카메라의 유연한 움직임은 이 영화의 진정한 주인공이 누구인지를 보여준다. 한석규는 그동안 맡은 역중 가장 비중이 작았지만 그 어떤 영화보다 빛났으며 다른 연기자들도 연기력이 탄탄하다. 엔카를 부르는 김윤아는 연기자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수확이다.
  이 영화가 아직도 평가가 끝나지 않은 박정희시대를 본격적으로 ‘까발리는’ 대중영화로서 어떤 평가를 받을지, 그 시대를 경험하지 못한 20∼30대 관객들에게 다가갈 수 있을지, 보수와 진보세력의 논쟁거리로만 남을지, 대중적인 관심속에 논의가 증폭될지 아직 미지수다. 그러나 일단 뚜껑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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