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때 그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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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영화> '그때 그사람들'

‘추문과 향연의 시대’에 관한 프레스코화

영화 ‘그때그사람들’(감독 임상수, 제작 MK픽처스)은 역사의 두 단면에 대한 정교한 스펙터클이다.

이 영화 속 어느 한 장면에서 카메라는 ‘남산 대공분실’로 표상되곤 하던 ‘권력의 은밀한 집행기관’을 파노라마처럼 훑어간다. 이곳에서는 용의자가 벌거벗기운채 심문을 당하고, 입을 잘못 놀렸다고 호통을 받으며, 물고문이 공공연히 자행된다. 카메라의 트래킹으로 만들어진 이 ‘고문의 스펙터클’이 한 권력이 생성되고 유지됐던 역사를 보여주는 횡단면이라면 밑바닥의 운전사, 요리사로부터 권력의 최상층부가 엮어간 ‘술자리’는 ‘추문의 스펙터클’이자 시대의 종단면이다.

여기서 개인은 역사라는 비극의 무대 위에 선 희극배우들이다. 각 개인이 연기하는 코미디는 옴싹달싹 할 수 없는 거대하고 끔찍한 폭력으로 돌아온다. 임상수 감독은 역사가 가진 종횡단면의 스펙터클과 개인과 구조에서 발생하는 희비극의 아이러니 속에서 ‘추문과 향연의 시대’에 관한 일종의 프레스코화를 완성한다.

영화는 10.26 사건이 일어난 단 하루, 관련자들의 동선을 따라간다. 서로 다른 출발점에 섰던 각자의 동선은 궁정동 안가의 술자리에서 모여져 교차했다가 다시 흩어진다. ‘대통령의 여자’를 관리하는 것으로 암시되는 중앙정보부의 의전과장(한석규 분)과 경호실장-대통령 커넥션이 못마땅한 중앙정보부장, 대통령의 오른팔로서 ‘안하무인’의 권력을 휘두르는 경호실장, 그리고 대통령. 이 4명을 축으로 집에서 쉬다가 호출당한 말단 직원이나 운전기사, 안가의 요리사, 술자리의 흥을 띄우기 위해 투입된 여대생과 가수 등 주위 사람들의 우여곡절이 그려진다. 권력암투과정에서 소외당한 중앙정보부장의 ‘반란’이 상황판단의 실수로 인해 실패로 종결되기까지의 이야기가 회화적 질감과 색감 속에서 만화경처럼 펼쳐진다.

흥미로운 것은 ‘처녀들의 저녁식사’, ‘바람난 가족’에서 보여줬던 임상수 감독의 ‘성적 담론’이 대단히 논쟁적이고 정치적인 이 영화 속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점이다. ‘여색’과 ‘사무라이’, ‘가족’에 대한 끊임없는 환기는 지난간 역사 속의 비극이 곧 ‘수컷의 운명’이 잉태한 것이기도 하다는 점을 암시한다.

이 영화에서 감독은 한 시대의 비극을 추문으로 얼룩진 우스꽝스런 향연에 응축시켰다. 여기에는 냉소와 연민, 야유가 교차하고 이를 바라보는 관객의 감정 역시 마찬가지다.

이 영화는 작가의 의도가 어떠하든 많은 사회적 파급력과 정치적 논쟁들을 배태하고 있다. 한 예술창작자가 우리 사회에 내민 도전장이기도 하다. ‘일반적인 명제’로 치환할 수 없는 실존인물들의 역사가 현재시점으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난감한 도전장에 정치권과 우리사회 전체는 어떤 대답을 내릴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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