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지방자치, '작은권력'에 마비된 도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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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위기의 지방자치, '작은권력'에 마비된 도덕성

지난해 광주시의회 의원들 외유성 낭비 전국 최고 '불명예'

시행 10년을 맞은 지방자치제가 흔들리고 있다. 연간 80조원의 예산을 사용하는 거대 조직이지만 그에 걸맞은 역할과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단체장들은 혈세를 동원해 주민 삶의 질 제고와는 관련성이 적은 대형 개발사업에만 치중하고, 이를 견제하고 감시해야 할 지방의회는 들러리로 전락하기 일쑤다. 또한 정당공천제 실시로 단체장 등이 지자체 복지·후생 사업보다는 소속 중앙당의 눈에만 들려고 하는 경향성도 두드러졌다. 특히 5·31 지방선거 결과 한나라당 출신이 단체장과 의회를 싹쓸이하다시피 하면서 이같은 현상은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지난해 광주시의원들이 해외 산업시찰을 빙자한 외유성 낭비가 전국 최고로 밝혀져 불명예를 남겼다.
 
◇단체장·의원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참여정부의 분권정책으로 지방자치단체장의 권한이 막강해졌다. 그러다보니 초호화 시청사를 짓거나 대형 개발사업으로 혈세를 낭비하는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단체장들의 이같은 부적절한 행태는 예산의 승인·결산 권한을 가진 지방의원과의 결탁이나 묵인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번 선거에서 단체장과 의회가 특정 정당 출신으로 채워지면서 견제와 감시 기능은 더 취약해질 수 있다.

단체장들의 ‘지방의원 회유’도 횡행하고 있다. 일부 단체장은 의원들의 외유성 여행을 눈감아주는 것도 모자라 ‘접대여행’도 서슴지 않고 있다. 해외 여비 2억원을 의원들에게 대신 지급하기 위해 의원 신분을 ‘민간인’으로 조작했다가 적발된 전북 ㅅ시 사례가 상징적이다.

집행기관의 산하단체까지 나서서 의원들에게 ‘거마비’를 돌리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경기도체육회와 생활체육협의회는 경기도 의원 해외 연수 격려금으로 4천여만원을 지급했다가 감사에서 적발됐다. 부산 북구의회는 의원간 소송 비용을 구의회 운영비로 충당했다.

의회가 집행부의 주요 정책이나 예산 심사에서 ‘거수기’로 전락하는 예도 적지 않다. 지난해 서울시의회는 수백억원에 달하는 노들섬 오페라하우스 건립예산에 대해 ‘전액 삭감하겠다’고 엄포를 놓더니 정작 본 심사에서는 없던 일로 돌아섰다.

◇막대한 이권과 결탁한 지방자치단체= 의회의 감시장치가 해제되자 지방자치단체는 인·허가권을 무기로 이권에 개입하고 있다. 행정자치부에 따르면 최근 3년간 16개 시·도에 대한 합동감사를 통해 중징계 57건, 경징계 585건, 훈계 2,040건, 경고 22건 등 총 3,653건의 행정조치를 내렸다. 대부분 특정인 소유 토지에 유리하도록 도시계획을 변경해 주거나 폐광지역에 아파트·학교 신축 승인, 무리한 설계 변경 등 건축분야에 집중됐다.

공무원과 건설업자간의 유착·결탁도 근절되지 않고 있다. 대전시 공무원 ㅈ씨 등은 지난 5월 8개 건설업체로부터 감독 완화, 공사시 고득점 부여의 특혜를 제공하는 대가로 무려 60여차례에 걸쳐 1억3천8백만원의 금품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경북 구미시와 구미시의회는 준공업지역에 아파트를 17층까지 지을 수 있도록 하는 ‘도시계획조례’를 제정해 줬다.

◇매관매직도 성행= 수억~수십억원을 쓰고 당선된 단체장은 임기 동안 선거비용의 수십배를 챙긴다는 게 정설이다. 이 때문에 공무원들의 매관매직이 성행하고 있다. 사무관 승진시 3천만원, 서기관 승진시 5천만원을 단체장에게 바친다는 ‘3사5서’란 말이 나돌 정도다.

모 지역 14개 시·군 단체장 가운데 ‘매관매직’을 하지 않는 단체장은 서너명에 불과할 정도라는 말이 돈다. 이 지역 ㄱ시 공무원은 “드러나지는 않지만 공직에선 이미 민선이 관선보다 더 심하다”고 말했다.

이번 선거를 통해 지방의 중앙정치 예속도 가속화될 전망이다. ‘풀뿌리’ 민주주의의 핵심인 기초의원까지 정당공천을 받으면서 공천권을 갖고 있는 당원협의회장(옛 지구당위원장)에게 권력이 이동됐다. 광역·기초 단체장과 의원들이 지구당위원장에게 밉보일 경우 출마는 생각할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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