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건ㆍ임동원 前 국정원장 구속수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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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신건ㆍ임동원 前 국정원장 구속수감

DJ정부때 국정원 1800여명 상시도청
 
김대중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이 여야 정치인과 경제인, 언론인 등 국내 주요 인사 1800여명의 휴대전화번호를 감청장비에 입력해 상시적으로 불법감청을 했다고 15일 검찰이 밝혔다.

서울중앙지검 도청수사팀은 이날 임동원(71)·신건(64) 전직 국가정보원장에 대한 구속영장에서 “국정원 8국(과학보안국)은 휴대전화 유선중계통신망 감청장비(R2)에 이인제 민주당 고문 등 여당 정치인과 박종웅 한나라당 의원 등 야당 정치인, 최아무개씨 등 경제인, 이아무개씨 등 언론인, 박지원·박준영씨 등 고위 공직자, 이형택씨 등 대통령 친인척, 김아무개씨 등 사회 각계 인사 등 국내 주요 인사 1800여명의 휴대전화 번호를 입력해 상시적으로 불법감청했다”고 밝혔다.

검찰 조사 결과 국정원은 2002년 3월11일 민주당 경선과 관련해 이인제 고문의 휴대전화를 도청하고, 같은 무렵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의 당내 인적쇄신 움직임과 관련해 김영일 한나라당 의원과 중앙일보 기자 사이의 통화도 도청했다.

임동원 전 원장은 2000년 4월 총선 출마자들에 대한 통신첩보, 현대그룹 왕자의 난과 유동성 위기, 의약분업 사태, 안기부 비자금 사건과 관련한 강삼재 의원의 통화 내용과 다음해 대북지원과 관련된 박재규 통일부 장관 등의 통신첩보도 보고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서울중앙지법은 이날 밤 검찰이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청구한 두 전 원장의 사전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김득환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두 전 원장이 도청에 가담한 혐의에 대해 부인하고 있지만, 수사기록에 나와 있는 당시 직원 진술들과 정황을 보면 불법감청이 있다는 것에 신빙성이 있다고 보이고, 두 원장이 감청에 직·간접적으로 관여·묵인한 점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그는 “국가적 차원의 조직적 범죄이므로 범죄 자체로서 증거 인멸의 가능성이 있고, 특히 신 전 원장은 수시로 직원과 만나 대처 방안을 논의하고 증거 인멸을 시도한 정황이 있다”고 영장 발부 사유를 설명했다.

두 전 원장은 이날 밤 서울구치소에 구속 수감됐다.

상시도청 1800명 누구인가

김대중(金大中)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이 주요 인사 1800여 명을 상시 도청한 것은 당초 알려진 것보다 훨씬 광범위하고 조직적으로 도청이 이뤄졌음을 의미한다.

이는 “제한적으로 불법 감청이 이뤄졌다”는 국정원의 자체 조사 결과와 큰 차이가 있어 국내외에 큰 파장을 몰고 올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주요 인사 1800여 명 누구인가= 임동원, 신건 두 전 국정원장의 구속영장에는 도청 대상자 1800여 명 가운데 일부 인사의 이름이 나와 있다. 검찰은 이름을 완전히 밝히진 않았다.

2000년 4월 국회의원 총선과 관련해 이○○, 권○○, 배○○, 조○○ 씨 등 총선 출마자가 도청 당했다. 2000년 4월에는 대통령 등을 비판한 한국논단 사장 이도형, 2000년 현대그룹의 후계자 문제 등과 관련해 정몽헌, 김윤규, 이익치 씨 등 현대 관계자들이 도청당했다.

2000년 여름 의약분업 사태 당시에는 신상진 씨 등 의사협회와 약사협회 간부, 2000년 10월 말부터 2001년 3월경까지는 햇볕정책을 비판한 지○○ 씨가 집중적인 도청 대상이었다. 2000년 10월부터 2001년 3월까지 최규선(崔圭善) 씨가 도청당했으며, 2000년 말부터 2001년 초까지 통일부 장관 박재규 씨와 통일부 간부가 통화한 내용이 도청됐다.

2000년 10월부터 2000년 말경까지 이형택 씨 등 대통령 친인척의 행동이 문제가 되자 이○○, 이○○ 씨 등 대통령 친인척 등의 통화가 도청됐다.

2000년 말 안기부 비자금의 정치권 유입 의혹이 불거지자 강삼재 의원이 도청 대상이 됐다. 2001년 5월 안동수 장관 임명과 관련해 민주당 관계자간 통화가 도청됐으며, 2001년 여름 황장엽과 이○○ 전 의원간 통화가 도청됐다.

2001년 8월에는 한나라당 박○○ 의원과 김○○ 씨 사이의 ‘언론사 세무조사에 대한 항의 단식 농성’ 관련 통화가 도청됐다. 2001년 9월 자민련 이○○ 의원의 전화가 도청됐으며, 2002년 1월 고위공직자 박지원 씨와 박준영 씨 사이의 취업알선 통화가 불법 감청됐다.

2002년 3월 한나라당 김○○ 의원과 중앙일보 기자 간 ‘이회창 총재의 당내 인적쇄신 요청’ 관련 통화가 도청됐다. 2002년 3월 한나라당 관계자와 하○○ 의원 사이의 ‘한나라당과 자민련 합당’ 관련 통화도 도청됐다. 2001년 황장엽 씨와 탈북자 단체 간부 간 전화도 도청됐다.

▽“사실상 국내 주요 인사 모두가 도청 대상”= 국정원은 유선중계통신망을 이용한 감청 장비인 R2에 사전에 입력한 전화번호로 전화통화가 시작되면 빨간색 불이 들어오는 기능을 이용해 특정 인사의 통화 내용을 도청했다.

국정원은 유선중계통신망을 통과하는 모든 통화내용을 무작위로 감청하다 도청 편의를 위해 R2에 여야 정치인, 재계 인사, 언론인, 대통령 친인척, 고위공직자 등 사회 각계 주요 인사의 휴대전화 번호 1800여 개를 미리 입력했다.

▽검찰 수사 어디로= 검찰이 도청당한 사람들에게까지 수사를 확대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사생활 침해를 받은 피해자들을 조사하기는 어렵다는 게 검찰 안팎의 시각이다. 그러나 검찰은 국정원이 도청 정보를 어떻게 활용했는지는 규명할 방침이다.

국정원 "참담하고 치욕스럽다"
 
국가정보원은 15일 검찰의 도청 수사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며 전직 원장 2명에 대한 사법처리가 임박하자 침통한 분위기에 휩싸인 가운데 국민불신 해소 방안을 강구하는 데 부심하는 모습이다.

국정원은 이달 말쯤으로 예상되는 검찰의 최종 수사결과 발표 직후 대국민 사과성명을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대국민 성명에는 도청 재발 금지를 다짐하는 대국민 약속이 포함되는 것은 물론 나름의 조직쇄신안을 발표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 측은 이날 대체로 이번 도청사건을 자숙과 반성의 계기로 삼아 국정원이 거듭 태어나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한 관계자는 “두 전직 원장에게 사전 구속영장이 청구된 데 대해 착잡함을 금할 길이 없다”며 “참담하고 치욕스럽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도 “국정원은 더욱 분발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데 진력하겠다”고 밝혔다.

반면 일각에서는 “검찰이 이렇게까지 강하게 나올 줄 몰랐다”, “반드시 구속수사가 필요하는지 모르겠다”며 검찰 수사에 불만을 표출하기도 했다.

국정원은 특히 두 전직원장에 대한 사법처리로 국회 정보위 차원에서 논의되는 국정원 개편론이 힘을 얻을 것으로 보고 상당히 우려하는 눈치다. 국회에서는 도청 문제가 불거진 국내파트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손을 대겠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정보위 소속의 한 열린우리당 의원은 “정보위원들 사이에 국내파트를 축소하고 해외파트를 강화해야 한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며 “공청회 등을 거쳐 조직·예산의 투명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구체적인 조직개편안 가닥이 잡혀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국정원 고위 관계자는 “참여정부 출범 이후 국내파트 축소와 해외파트 강화는 일관되게 추진돼온 방향”이라며 “국내파트의 추가 축소는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반대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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