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당한 부자]'나눔은 적선이 아니라 생존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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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당당한 부자]'나눔은 적선이 아니라 생존전략'

포스코 포항제철소는 올 들어 본사의 임원전용 구내식당을 폐쇄했다. 극심한 경기부진으로 솥을 들고 시위를 벌여야 할 지경으로 내몰린 지역 음식점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기 위해서다. 그 취지를 잘 아는 이 회사 임원들은 요즘 포항시내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있다.

포스코는 또 광양과 포항 제철소의 견학기념품도 지난달부터 '멸치' '미역' 등 지역특산품으로 바꿨다. 이전까지는 철(鐵)로 만든 '손톱깎이'나 '보온병'을 제공해왔다. 기념품 전량을 모두 인근 재래시장으로부터 사들인다. 지역경제에 보탬이 되기 위해서다.

매주 금요일 저녁, SK네트웍스 구내식당에 가면 밀가루로 뒤범벅이 된 직원들과 만날 수 있다. 이 회사 '사랑의 찐빵 나눔 동호회' 회원들이다. 이들은 준비한 반죽을 싣고 다음 날 양로원이나 장애아동복지시설을 방문해 직접 400여개의 찐빵을 만들어 준다. 뿐만 아니라 매주 목요일 점심시간 마다 장애아동 14명이 거주하는 서울 체부동 '라파엘의 집'으로 향한다.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아이들의 식사를 돕고 기저귀도 갈아 준다.

이 모임을 운영하는 SK네트웍스 의무실의 노지현 간호사는 "단 2명으로 시작한 동호회가 임직원의 관심 속에 100여명으로 회원이 늘었다"며 "늘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기업들은 '나눔 경영'이라고 말한다. 기업 스스로가 적지 않은 돈을 내 사회공헌활동을 하기도 하고 임직원들의 참여를 지원하기도 한다. 국내 최대그룹인 삼성의 한 해 '사회공헌비용'은 약 3500억원. LG는 850억원, SK는 750억원을 쓴다. 교육, 문화활동을 지원하는 재단에 출연하거나 직접 성금을 내기도 하고 사회복지 관련 시설을 운영하기도 한다. 문화 예술 분야 지원에 돈을 아끼지 않는 한화그룹 같은 곳도 있다.

지난 한 해 삼성의 1200여 봉사 팀에서 자원봉사에 참여한 임직원만 20여만명, 시간으로는 60만 시간에 가깝다. 삼성은 그룹 내 사회봉사단이라는 별도의 조직을 만들어 이런 활동을 지원하고 최고경영자들의 스케줄에도 '의무 봉사' 시간을 할당한다.

이처럼 기업과 기업에 근무하는 임직원들이 사회와'교감'하기 위한 노력은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기업에도 널리 확산되고 있다.

한솔교육은 '신기한 나라를 만드는 1% 나눔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600여명의 임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생활비 1%, 적금 1%, 급여 1%, 전문성 1%, 재능 1% 등 다양한 1%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이렇게 모아진 1%의 정성으로 빈곤지역 소외아동을 위한 공부방 사업을 벌여 이미 20여개의 공부방을 운영하고 있다.

부산의 한 중소기업은 매주 목요일 퇴근 때마다 전 직원들에게 두부를 나눠준다. 국산 콩을 사다가 회사 안에서 정성껏 만든 두부다. 사장부터 100여명의 종업원들이 모두 줄을 서서 3~4모의 두부를 받아 들고 퇴근한다. '정성을 나누기 위한' 소박한 행사다.

으레 그러려니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기업들이 체계적으로 사회와 교감하려 애쓰는 나라가 많지 않다. SK텔레콤과 신세계는 직원들의 봉사활동을 인사고과에 반영하고 있다. 사회공헌 아이디어를 내는 직원에게 인센티브를 주는 대기업도 적지 않다. 공장이 들어선 지역에 문화회관이나 운동장을 지어주기도 한다.

'나눔 경영'은 기업들 입장에서 그저 적선하듯 던지는 게 아니라 일종의 생존전략이다. 사회와 교감하지 않으면, 사회에 책임을 지지 않으면 생존하기 어렵다는 절박한 당위로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이게 바로 최근 기업 경영의 새 패러다임인 '지속가능경영'의 골자다. 기업이 장기적 관점에서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경제·환경·사회에 대한 책임이 조화를 이뤄야한다는 것이다.

직원들에게 미치는 영향도 적지 않다. 삼성에버랜드 국제화기획실의 장재원 과장은 최근 2년간 이 곳에 근무하면서 머리가 맑아졌다고 한다. 국제화기획실은 맹인 안내견을 교육해 무상으로 분양하는 사업을 한다. 그는 "몸은 피곤하지만 마음은 항상 밝다"며 "2년간 근무하면서 그동안 소진한 에너지를 재충전한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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