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문과 이름바꾸기 붐 … 학생들 대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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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국문과 이름바꾸기 붐 … 학생들 대환영

문화콘텐츠학·문학영상학과 … IT세대 맞춰 대변신 
고리타분한 이미지 벗고 뉴미디어 과목 강의 "영화·게임 배운다"

‘영상문화이론’, ‘방송극본론’, ‘편집디자인 실기론’, ‘문학과 대중문화’, ‘언어와 매스미디어’….

어떤 학과의 강의 제목일까? 연극영화? 신문방송? 아니다. 모두 국문과의 전공 과목들이다. 국문과가 대변신하고 있다. 영화·출판·방송·미디어를 넘나드는 강의들이 국문학 전공으로 개설되고 ‘콘텐츠’와 ‘미디어’ ‘디지털’이란 말이 들어가도록 아예 학과 이름을 바꾸는 대학이 늘고 있다.

영화와 게임, 인터넷, 휴대폰으로 ‘영상’이란 새로운 유전자를 새긴 IT세대들은 미디어용 기사, 방송 극본, 영화·게임 시나리오 등 실제 글쓰기·이야기를 가르치는 신설학과의 문을 두드린다. 일부 대학에선 국문과 신임교수 채용 때 ‘문화콘텐츠학 강의가 가능할 것’이라고 명시하는 경우도 생겼다.

‘고전문학개론’, ‘현대문학개론’ 같은 강의만으로는 더 이상 ‘손님(학생)’을 끌기 어렵고, 국문과를 졸업하면 취업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국문과의 ‘이름바꾸기 바람’은 지방대에서 먼저 불고 있다. 강릉에 있는 관동대는 2년 전 ‘미디어국문과’로 이름을 바꿨다. 학교측은 ‘국문’이란 이름을 완전히 떼낼 것을 요구했지만 전공교수들의 반대로 ‘미디어’를 붙이는 선에서 절충했다. 경주 위덕대는 지난해 ‘국문’이란 이름을 버리고 문화콘텐츠학부로 개명했다. 문학영상학과(건양대·논산), 미디어문학부(세명대·제천)도 생겨났다. 이들 모두 신문·방송·잡지·홍보 글쓰기와 시나리오 등 극본쓰기를 기본 과목으로 개설했다. 학생들도 대환영이다.

국문과는 1990년대 문예창작과 설립 붐이 일면서 1차 ‘된서리’를 맞았다. 80년대까지만 해도 중앙대와 서울예대 두 곳에 불과했던 문예창작과는 불과 10여년 사이 4년제 대학에만 20여개가 설립되며 국문과를 위협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콘텐츠’와 ‘미디어’ ‘디지털’이 국문과의 한몫을 차지해가고 있다. 한양대는 지난해 국문과 일부 교수가 나서 ‘문화콘텐츠학과’를 신설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소설가인 이화여대 류철균 교수는 올해 국문과에서 디지털미디어학부로 자리를 옮겼다.

학생들은 민담·민요·시·소설 등 전통적인 국문학 영역을 인문학적 교양으로서가 아니라 영화·게임·애니메이션 등 산업과 연계된 문화콘텐츠로서 배우고 싶어한다. 신문·방송·인터넷 등 미디어는 물론, 최근 산업규모가 커지고 있는 영화·게임산업, 이벤트·공연 기획 분야 등에 진출하고 싶기 때문이다. 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창설을 주도한 박상천 교수는 “교수들만 모르고 있을 뿐이지, 학생들은 사회 변화를 절실히 느끼고 있다”고 말한다. “문화콘텐츠학은 뉴미디어 관련 산업에서 인문학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기획·시나리오·마케팅 방법을 학문적으로 접근해 가르친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누가 가르칠 것인가’가 대학마다 비상이다. 디지털·미디어·문화산업과 대학의 산학협동이 아직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라 현장 전문가들을 초빙하는 경우가 많다. 한양대는 이번 학기 게임업체와 모바일 콘텐츠 업체의 기획실장을 겸임교수로 초빙했다. 현장에서 뛰고 있는 이 겸임교수는 기말시험으로 시험지를 펼쳐놓는 대신 학생들이 양복 정장을 입고 와 자신의 기획을 발표(프레젠테이션)하도록 했다. 박 교수는 “교수들이 생각 못하는 일이었다”며 “현장의 힘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국문학은 쇠퇴하는 것일까. 류철균 교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류 교수는 “세계 11~12위권 언어인 한국어는 문학시장에서는 늘 주변적 존재지만 한국의 영화와 드라마, 게임은 세계시장을 선도하고 있다”며 “국문학의 연구대상이 디지털 스토리 분야와 사이버 문화현상으로 확장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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