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장이 원고측 변호인 회유했다"
  • 해당된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치

"재판장이 원고측 변호인 회유했다"

[오마이뉴스 유창재 기자]'담배소송'과 관련해 국가와 KT&G를 상대로 소송을 하고 있는 원고측 변호인단이 해당 사건을 맡고 있는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2부의 재판장 조관행 부장판사에 대한 '법관징계요청서'를 법원행정처에 15일 오후 제출했다.

원고측 변호인단은 '법관징계요청서'에서 서울대 의대 교수들이 작성한 감정서의 요지서로 인해 왜곡 보도 논란이 일자, 해당 재판부의 조관행 부장판사가 두차례나 직접 원고측 변호사에게 전화해 장시간 동안 회유를 시도했다고 주장했다.

법관징계요청서에 따르면, 조 부장판사는 원고측 변호인인 배금자 변호사에게 지난 8일과 9일 오후에 전화했고, 이틀간에 걸쳐 각각 1시간, 1시간30분간 통화했다.

첫번째 전화통화(8일 오후)에서 조 부장판사는 지난 5일자로 담배소송과 관련해 '대부분의 언론에서 왜곡 보도된 것이 재판부의 왜곡된 요지서 때문임을 문제삼아 판사의 책임을 묻겠다'고 항의하는 배 변호사에게 '다음날(9일) 4시까지 언론보도가 잘못 나간데 대해 기자들을 불러 해명하겠다'고 하면서 '그때까지 원고측의 조치는 보류해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또 다음날(9일) 오후 4시경 조 부장판사는 배 변호사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차를 한잔 마시자'고 하면서 법원으로 오도록 요청했다고 한다. 이를 배 변호사는 거절했고 또다시 긴 시간 동안 조 부장판사와 전화통화가 이뤄졌다고 한다.

8일과 9일, 장시간 전화통화

두번째 통화에서 조 부장판사는 "요지서의 작성과 배포에 대해 (서울중앙지법) 원장님과 (민사) 수석부장님과 상의했다"며 "(내가 직접) 기자회견은 할 수 없지만 다른 방법으로 원고측 대리인의 입장을 반영할 수 있지 않느냐"고 원고측 변호인에게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더구나 조 부장판사는 배 변호사에게 "원하는 방향"이라는 말을 사용하면서 회유를 시도했으며, 전화통화에서 재판장으로서 적절하지 못한 발언을 사용했다고 원고측 변호인단은 주장했다.

이외에도 원고측 변호인단은 "조 부장판사가 배 변호사에게 '기사가 잘못 나갔다'고 인정했으며, 감정서 요지 작성자에 대해 처음에는 '감정인'이라고 말을 하다가 다시 '주심판사가 했다'고 말을 바꾸는 등 재판장의 품위를 손상시켰다"고 지적했다.

이와 같은 내용의 법관징계요청서를 박용일, 이석연, 배금자, 박찬운, 임영화 변호사 등 담배소송의 원고측 변호인단이 작성해 법원행정처에 제출함에 따라 '담배소송 요지서' 논란이 확대될 전망이다.

법원행정처에서 원고측 변호인단의 청원에 따라 징계 사유에 해당된다고 판단되면 해당 법원장인 서울중앙지법원장에 이를 통보할 수 있다. 그리고 서울중앙지법원장도 징계 사유가 된다고 볼 경우 대법관 4명과 고등법원장 2명, 지방법원장 1명이 참가하는 징계위원회가 열리게 된다. 징계의 수위는 최고 정직까지 가능하다.

배금자 변호사 "재판부의 요지서 작성은 사법부 전체의 공정성을 의심케 하는 사건"

법관징계요청서를 제출한 원고측 변호인단의 배금자 변호사는 "왜곡된 요지서를 작성해 배포함으로써 대규모 오보사태를 초래했다"며 "이는 사법부의 공정성과 신뢰를 손상시키고 법관의 품위와 법원의 위신을 실추시킨 행위로 해당 법관에 대한 징계를 대법원에 요청했다"고 16일 밝혔다.

이어 "재판부가 기자들에게 배포한 요지서는 너무도 치밀하게 감정서를 왜곡하는 방향으로 짜여 있어 재판부가 이를 했다고 도저히 믿기도 어려운 상황"이라며 "더구나 요지서를 작성하고 배포하는데 있어 재판부의 부장판사가 법원장과 수석부장과 그 내용까지 검토하면서 의논까지 했다고 직접 말했다"고 전했다.

덧붙여 배 변호사는 "재판부가 요지서를 기자들에게 배포한 것은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정확한 보도를 위한 자료로 선의의 뜻에서 제공한 것이라고 변명하지만, 구체적인 모든 증거는 결코 그것이 아닌 사법부 전체의 공정성을 의심케 하는 사건"이라며 "사법부는 해당 재판부가 왜곡된 요지서 작성·배포로 엄청난 오보를 초래했고, 국민을 현혹하고 우롱한 것에 대한 대국민 공식사과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11일 원고측 변호인단과 김일순(전 역학회 회장) 연세대 의대 명예교수, 서홍관 국립암센터 금연클리닉 책임의사 등은 기자회견을 통해 '담배소송'을 심리중인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2부(재판장 조관행 부장판사)가 서울대 의대 교수들로부터 제출받은 감정서 원본의 내용을 왜곡해 요지서를 작성해 배포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또 이날 원고측 변호인단은 법관의 불공정한 재판이 진행될 것을 우려해 '법관기피신청'을 서울중앙지법에 제출한 바 있다.

민사수석판사 "요지서 작성·배포, 예단 및 잘못 보도될 소지 있어 하지말라 했다"

한편 서울중앙지법의 민사부 공보담당을 하고 있는 이태운 민사수석부장판사는 <오마이뉴스>와의 16일 전화통화에서 "원고측 변호인단이 법관윤리강령에 위배해서 법관징계요청서를 제출했다는 소식을 법원행정처로부터 들었다"며 "이에 대해 (제가) 법원의 입장을 밝힐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런 일이 있다면 정해진 절차에 따라서 처리하지 않겠나"고 말했다.

이어 이 수석부장판사는 '조 부장판사가 요지서를 작성, 배포한 것을 수석부장판사나 법원장에게 보고를 했는지'를 묻는 질문에 "조 부장판사가 요지서를 작성한다고 말하길래 (언론보도에) 예단을 줄 수도 있고 잘못 보도될 소지가 있기에 적절치 않고 필요성이 없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하지 말라고 했다"며 "그러나 조 부장판사가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언론에 요지서를 주는 것이 옳다고 하면서 본인은 필요하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또 그는 '법원장에게도 보고가 됐고 요지서 작성, 배포에 동의를 했나'는 물음에 "(요지서에 대한) '보고'라는 표현은 그렇고 (수석부장판사로서) 동의가 아니라 반대의 뜻을 전했다"고만 답했다.

이외에도 이 수석부장판사에게 '조 부장판사가 배금자 변호사에게 지난 8·9일 두 차례 직접 전화한 사실을 아는가'라고 물었으나, 그는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정황을 잘 모른다"며 "원고측 변호인이 (이번 문제로) 기자회견을 한다니까 경위를 설명하느랴 전화를 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원고측 변호인단이 법관징계요청서 내기까지

 
오마이뉴스 안홍기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2부(재판장 조관행 부장판사)가 심리중인 담배소송과 관련해 서울대 의대 교수들이 재판부에 제출한 감정서에 대해 재판부가 자체적으로 작성, 배포한 '요지서'를 놓고 편파 논란이 재판부에 대한 '기피신청'뿐만 아니라 '법관징계'로 확산되고 있다.

이번 감정서 요지서 논란의 발단은 지난 4일 재판부가 서울대 측으로부터 감정서(A4용지 62쪽)를 건네받았고, 원고측(배금자 변호사)과 피고측(KT&G 소송대리인 법무법인 세종)에 전달했다. 이 과정에서 재판부는 원고측에 요지서를 작성해 법원출입기자들에게 배포한다는 언급을 하지 않았다.

다음날인 5일 오전 11시30분경 재판부는 기자들에게 감정서(원본)와 요지서(4쪽)를 전달했고, 언론은 일제히 <흡연-폐암, 구체적 인과관계 확인불능>, <"흡연→폐암, 확인 안된다">, <서울대 의대 교수들 "흡연-폐암 인과관계 확인 어려워">, <흡연 "소송환자의 인과관계는 확인 불능" 폐암> <'흡연-폐암 관련성 과학적 입증 불가능'> 등의 제목으로 보도했다.

이에 대해 원고측 변호인인 배금자 변호사는 사태파악에 나섰다. 배 변호사는 재판부가 감정서에 대한 요지서를 기자들에게 배포했음을 확인하고, 요지서가 왜곡됐음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준비했다. 이와 함께 배 변호사는 재판부에 대한 '기피신청'을 준비했다. 이같은 사실이 법원출입기자들 통해 재판부에 알려지자, 조 부장판사가 직접 배 변호사에게 8일 오후 전화를 걸었다.

첫번째 전화통화에서 배 변호사는 조 부장판사에게 '다음날(9일) 4시까지 언론보도가 잘못 나간데 대해 기자들을 불러 해명해달라'고 했으나, 다음날인 9일 조 부장판사는 출입기자들에게 어떠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또다시 오후 4시경 배 변호사에게 두번째 전화를 했다.

결국 배 변호사를 비롯한 원고측 변호인단은 11일 오전 11시 서울중앙지법 기자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재판부가 작성한 요지서가 왜곡됐음을 알리면서 재판부 기피신청을 제출했다. (법관윤리강령 제4조에 따르면 "법관은 교육이나 학술 또는 정확한 보도를 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구체적 사건에 관하여 공개적으로 논평하거나 의견을 표명하지 아니한다"고 돼있다.)

또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국립암센터 측에서도 성명서를 통해 "흡연은 폐암 원인의 80~90%"라면서 "재판부가 감정서의 요지를 왜곡해 작성했다"고 밝혔다.

이어 원고측 변호인단은 15일 오후 조관행 부장판사에 대한 '법관징계요청서'를 대법원에 제출했다. 원고측 변호인단에 따르면 조 부장판사가 '요지서'를 작성·배포 행위는 법관징계법 제2조 제1호 '법관이 직무상 의무를 위반하거나 직무를 게을리 한 때', 제2호 '법관이 그 품위를 손상하거나 법원의 위신을 실추시킨 경우'에 명백히 해당한다는 입장이다.



/유창재 기자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