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과거사법, 태어나지 않았어야 할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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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과거사법, 태어나지 않았어야 할 법

여권의 주도로 학문 연구의 영역을 정치적 영역으로 끌어와 국론을 극심하게 분열시켜온 ‘진실 규명과 화해를 위한 기본법(과거사법)’이 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 이제 대통령의 서명과 공포 절차만 남겨둔 채 사실상 확정됐다. 을사조약(1905년) 이후 최근까지 100년간의 주요 사건들에 대한 진상을 규명하는 학문적 작업이 왜 정치권의 주도로 범죄 수사하듯이 이루어져야 하는지, 우리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이 법에 따라 설립되는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수사권에 준하는 권한을 갖고 앞으로 최장 6년간 조사 작업을 벌이게 돼 있어 그 과정에서 증폭될 것이 뻔한 사회적 갈등과 정쟁도 우려된다.

여권이 이른바 ‘개혁 입법’의 하나라며 과거사법 입법에 목을 매다시피 한 이유가 실은 야당 지도자를 포함한 보수 세력을 매도하기 위한 정략적 목적에 있다는 의심은 여전히 유효하다. 남한 정권의 인권 침해 사건 등과 함께 북한 정권이나 친북 세력에 의한 인권 침해·테러 사건 등도 한나라당의 요구로 조사 대상에 포함됐다고는 하나 국회 본회의에서의 희한한 통과 과정이 이를 입증한다. 기를 쓰고 입법을 밀어붙여온 여당 의원의 과반이 정작 표결에서는 반대한 것이다. 표결에 참여한 열린우리당 의원 122명중 지도부 상당수를 비롯한 63명이 반대 내지 기권하고 59명만 찬성했다.

반대한 여당 의원들은 “조사 대상에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거나 적대시하는 세력이 포함된 것은 민주인사도 조사하려는 것”이라는 이유를 내세우며 ‘제2 국가보안법’이라고까지 비난했다. 상대방에게 불리할 사안만 조사하고, 거꾸로 자신들이 불리할 수 있는 사안은 조사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해석해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진실 규명이라는 명분의 배경에 숨겨진 정략적 의도가 아니고 무엇인가.

과거사법으로 100년이 지난 사건까지도 진상을 과연 제대로 밝혀낼 수나 있을 것이며, 또 불확실한 규명으로 정략적 이용 외에 뭘 어쩌자는 것인지 알 수 없다. 결국 과거사법은 국가와 국민의 미래를 위해 태어나지 않아야 할 법임이 분명한데, 앞으로 그 정략적 이용은 어떻게 막을 것인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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