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로스쿨' 박용현 학장의 25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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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로스쿨' 박용현 학장의 25시

조선대 법대학장 ... '나를 설레게 하는 것들'
로스쿨 유치는 20만 동문의 '숙원사업' 단언

구성원들 격려성 한마디에 피곤함이 사르르

최근엔 지인 재혼 청첩장까지 '목하고민중'

3일 로스쿨 관련 국제학술회의 참석차 또다시 출장길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 유치에 여념이 없는 조선대 법대 박용현 학장(50). 그는 요즘 세상에서 가장 바쁜 사람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로스쿨 유치에 성공한다면 평생 설레임 속에서 살아 갈 것임에 바쁘게 움직일 수밖에 없단다.

평 교수로 후학을 가르치는 데 몰두하는 게 좋을성 싶다. 헌데 누가 왜 자신을 이렇게 만들었는지 잘 모른다. 자나깨나 로스쿨 유치 운동에 하루 해가 짧기만 하다.  

자신을 평생 동안 설레게 만들 로스쿨이야말로 법대학장인 자신과 조선대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그는 단언한다. 세계화의 기로에 선 다시말해 1946년 민립 조선대학이 출범한 이래 가장 큰 프로젝트 이기에 거두절미 하고 20만 동문 모두의 '숙원 사업'이라고 잘라 말한다. 동문들 역시 비장한 마음으로 뭉치고 있음을 실감하고 있다.

"자부심과 긍지를 갖고 로스쿨 유치 운동에 나서고 있습니다. 비단 우리대학만 사활을 거는 건 아닌줄 잘 압니다. 그러나 로스쿨에 필요한 충분조건을 일찌감치 구비한 우리대학이 당연히 그것도 선순위에 낙점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선견지명이 있는 조선대학이 로스쿨 유치 만큼은 전국 어느대학보다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자신을 특별히 설레게 하는‘로스쿨 유치 운동’의 굳은 신념과 각오는 그의 우람한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게 아닌가 싶다. 타고난 보스기질에 자신감 넘치는 정열과 의욕은 그의 주변 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 물론 사람만나 설파 하는 것처럼 피곤한 게 또 어디 있을 까. 그래도 조금도 내색하지 않고 부지런히 설명한다.

과장적이거나 인공적인 것은 싫어 한다는 박 학장. 최근엔 재혼 청첩장까지 받아 들고 허허하면서 너털 웃음을 짓는다. 고민은 되지만 좋은 쪽으로 해석하고 싶단다. 로스쿨을 유치할 때 까지 표정관리에도 신경 써야할 판이라는 박 학장은 영남대에서 열리는 법학전문대학원 설립 추진을 위한 국제학술회의에 참석차 3일 또 출장길에 오른다. 피곤함의 연속이지만 구성원들이 보내준 격려성 한마디는 모든 걸 잊게함과 동시에 다시금 힘을 솟구치게 한다.

이렇듯 밤낮 없이 누굴 만나든 오직 로스쿨 유치의 당위성을 외치며 자신감에 꽉차 있는 박 학장은 전남 고흥군 대서면 송강리 714번지에서 태어났다.

서슬이 퍼렇던 1980년 3월 이현숙씨와 백년가약을 맺은 두 달 뒤 5.18 광주민중항쟁을 맞이했다.
청운의 꿈을 안고 혈기왕성했던 조교시절이었다. 앞날이 어둡기만하던 그야말로 암울했던 군부독재 시절이 한창이던 1984년 9월1일자로 마침내 모교 강단에 전임 발령을 받았다.

이후 1997년 독일 함부르크대학에서 객원 교수로 딱 1년동안 근무한 뒤 복귀해 교무부처장으로 본부 보직을 맡아 봉사했다. 2003년 1월엔 제16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외교통일안보분과위원회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다 그 해 9월1일자로 법과대학장을 맡아 오늘에 이르렀다. /광주리포트 취재부

■ 박용현은 누구
▲ 생년월일= 1955년 12월 20일
▲ 체격= 178㎝ 80㎏
▲ 혈액형= O형
▲ 학력= 고흥 대서초등-조대부중-조대부고-조선대
▲ 가족관계= 부인 이현숙씨와의 사이에 2남(기훈ㆍ기수)
▲ 주요경력= 독일 함브르크대학 객원교수(1997), 조선대 교무부처장(1998ㆍ2001), 광주 MBC칼럼위원(2000), 대통령인수위 외교안보분과 자문위원(2003), ) 광주시 규제개혁위원, 법제처 동북아법제자문위원, KBS광주총국 시청자위원회 부위원장, 법과대학장
▲ 주량= 소주 한병
▲ 애창곡= 가곡 '사월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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