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늪’에 교수도 외교관도 허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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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도박늪’에 교수도 외교관도 허우적

경찰청, 해외 인터넷도박 1만3000명 적발 

지방 국립대 교수 홍모(62)씨는 2003년 10월 인터넷 해외 도박사이트를 접했다. 도박에 관한 논문을 준비하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해외 도박사이트를 알게된 홍 교수는 재미삼아 슬롯머신 게임을 한두번하기 시작한 게 화근이 돼 최근까지 3000여차례 2570만원을 날렸다. 경찰 조사에서 홍씨는 “도박이 위험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나도 모르게 빠져들었다”며 “정년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인생에 큰 오점을 남겨 후회스럽다”고 말했다.

홍 교수와 현직 외교관 등을 포함해 해외 인터넷 도박 전문사이트를 통해 120억원대 도박을 벌인 1만3000여명이 1일 경찰에 무더기로 적발됐다. 서울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는 신용카드를 이용해 50개 해외 도박사이트에서 상습도박을 한 1만3000여명을 적발해 유모(49·무직)씨 등 7명에 대해 상습도박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김모(41·외교통상부 서기관)씨 등 26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결제횟수가 100차례 미만이거나 연 결제총액이 2500만원을 넘지 않는 나머지는 훈방조치했다.

이들은 인터넷 배너광고나 스팸메일 등을 통해 알게 된 해외 도박사이트에 회원으로 가입한 뒤 작년 한 해 동안 슬롯머신,세븐포커 등 도박을 하고 신용카드로 5만621차례에 걸쳐 120억원을 결제했다고 경찰은 밝혔다. 경찰은 전자상거래 사이트로 위장한 도박사이트 숫자까지 감안하면 작년 한해 도박자금으로 해외로 나간 돈이 250억원,해외 도박장에서 직접 결제한 금액까지 합치면 1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경찰에 따르면 외교부 서기관 김씨는 해외공관에 근무하던 지난해 122차례 3000만원을 도박에 결제했다. 1억원 이상을 도박자금으로 썼다 구속영장이 신청된 유씨는 의사인 부인이 빚을 갚아주는 대신 이혼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한 교원단체 사무직원 이모(36)씨는 신용카드 한도가 초과하자 회사 법인카드로 도박자금 2300만원을 결제했으며,2003년 1월부터 2년간 인터넷 도박으로 1억원을 날린 강모(32·여)씨는 여동생(25)의 신용카드로 2700만원을 결제하기도 했지만 신용불량자가 됐다. 강씨는 그러나 이후 제주도에서 식당종업원 생활을 하면서도 도박에 매달려 왔던 것으로 경찰조사 결과 밝혀졌다.

경찰은 정보통신부에 이번에 적발된 50여개의 해외 도박사이트 폐쇄를 요청하는 한편 ‘골드고스톱(www.goldgostop.com)’ 등 한국인이 운영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14개 해외 사이트 운영자 검거에 나설 방침이다. 경찰 관계자는 “인터넷 도박은 접근이 쉽고 결제가 간단해 평범한 사람들도 급속도로 빠져들게 된다”며 “사법처리된 33명 중 도박전과가 있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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