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행정구역 개편과 지역 경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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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행정구역 개편과 지역 경쟁력

열린 우리당이 광역자치단체인 도(道)를 없애는 대신 전국을 1특별시(서울)와 인구 100만명 이하 광역도시 60여개로 재편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한나라당은 전국을 70여개 광역도시로 분할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라고 한다. 여야는 지방행정구조 개편 필요성의 가장 큰 이유로 현행 지방행정 체제의 비효율성을 꼽고 있다.

유럽에서는 지역(地域·region 또는 Land), 군(郡·provincia, Kreis 또는 department), 시·읍·면(commune, municipio 또는 Gemeinde)의 3층제가 일반적인데, 각국은 경쟁력 강화를 위해 계층별로 지방자치단체를 통합하여 그 숫자를 줄여가고 있다. 잉글랜드, 웨일스,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의 4개 지역으로 나뉜 영국이 각 지역에 2층 또는 단층의 지방계층 구조를 형성해 온 것이나, 26개 카운티의 단일 지방계층 구조를 가지고 있는 아일랜드(4개 지역은 자치단체의 지위가 아님), 그리고 세계 시장을 목표로 22개 지역을 8개의 도시공동체로 묶은 프랑스의 예가 대표적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애초부터 교회와 장이 서는 광장을 중심으로 하는 마을 공동체, 즉 코뮌이나 게마인데 같은 마을 단위의 공동체가 기초지방자치단체로 구성되지 않았으므로 지역(地域) 단위와 군(郡)단위의 2층 구조밖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도(道) 단위는 기능면에서 지역(地域) 단위보다 못했으며, 군(郡) 단위는 규모면에서 유럽의 군(郡) 단위보다 못했다. 그런 점에서 230여개의 군을 합하여 60~70개의 자치단체로 통합하는 것은 효율성 면에서 일단 수긍이 간다.

그런데 오늘날 지방행정의 광역화는 비단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인해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수자원 공급, 쓰레기 처리, 공항과 항만의 공동이용 등의 산업화에 따른 생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보라, 서울시·인천시·경기도가 따로 이러한 문제들을 하나라도 해결할 수 있는가? 따라서 수 개의 도 단위를 묶은 새로운 광역 자치단체의 출현은 필수적이다. 그런데 군 단위만 통합해 놓고 도 단위는 통합하지 않고 폐지해 버린다면 어떻게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고려해야 할 중요한 사항이 또 있다. 오늘날 세계화 시대에 있어서의 경쟁은 세계적인 대도시를 중심으로 한 경쟁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미 오래 전에 고속철을 도입한 일본이나 프랑스에서는 레저시설, 연구단지, 첨단산업 등이 복합된 혁신 도시들을 파리나 도쿄에서 반경 150km 내지 180km 거리에 건설하고 있다. 파리권은 더 이상 파리시와 파리를 둘러싼 3개 군으로 구성된 일르드 프랑스에 한정되지 않고, 이미 바생파리지앵(센강, 르와르강, 뫼즈강, 모젤강 유역에 이르는 파리를 중심으로 한 분지)을 넘어 페리페릭 드 바생 파리지앵(파리분지 주변 지역), 즉 파리 반경 200km에 이른다. 이 지역이 프랑스 국내 총생산(GDP)의 약 43%를 차지한다.

그렇다면 우리도 인구 면에서 4000만~5000만 규모의 대도시권을 형성해 가는 도쿄권이나 상하이권과 경쟁하기 위해 전국을 군산~포항 축과 춘천~김천 축을 경계로 하여 3개 지역으로 나누고 이에 제주도를 합하여 4개 지역으로 나누어, 중부·동부·남부·제주도의 4개 지역으로 재편하는 것이 국제 경쟁에 보다 유리하지 않겠는가?

서둘러 결정을 내리기에 앞서, 과연 선진국들은 행정구역을 어떻게 구성하여 국가·지역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경쟁력 강화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 개편이라면 정치적으로 취약한 지역에 교두보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라는 국민의 실망과 의심에 찬 눈초리를 피하기 힘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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