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들이 방송대에 몰리는 진짜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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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회의원들이 방송대에 몰리는 진짜 이유는?

 재학생 국회의원만 13명… 50만 동문 생각하며 의정활동 공부

열린우리당 송영길 의원은 지난 26일 두 번째 대학 졸업장을 받았다. 연세대 경영학과 출신인 송 의원은 2000년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중어중문학과에 편입학했다. 5년 만에 졸업을 한 송 의원은 자신의 홈페이지에 “현역 국회의원으로서 방송통신대 과정을 다 마치고 졸업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감격스럽다”고 밝혔다. 송 의원은 올해 이 학교 일어일문학과에 다시 편입, 졸업생이면서 재학생인 흔치 않은 경우가 됐다.

요즘 국회에서 방송통신대 출신 의원들을 만나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다. 17대 국회의원 중 방송통신대 출신은 모두 18명. 이 중 졸업생은 송 의원 비롯해 열린우리당 배기선(행정) 김영주(국문) 의원, 한나라당 김영덕(법) 정화원(교육) 김충환(불문) 의원 등 6명이다.


▲ 열린우리당 송영길 의원(왼쪽부터), 최용규 의원 한나라당 정문헌 의원 남경필 의원
2005학년도 새내기를 포함해 13명의 재학생들을 살펴보면 열린우리당 최용규 김태년 이종걸 의원이 모두 중문과에 다니고 있고, 올해 송영길 의원이 일문과에 들어갔다. 한나라당에는 남경필(경제) 이병석(법) 정두언(영문) 의원이 03학번, 박진(중문) 최구식(경제) 권영세(경제) 박순자(환경보건) 의원이 04학번으로 입학했다. 정문헌(법) 이군현(경영) 의원은 올해 입학하는 새내기다.

방송통신대에 재학중인 의원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국내 명문대를 졸업하거나 해외 유학까지 다녀온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나라당 박진 의원은 미국 하버드대에서 행정학 석사,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같은 당 정문헌 의원은 미국 시카고대와 고려대에서 정치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고,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권영세 의원은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을 졸업했다.

그렇다면 국회의원들이 방송통신대에 다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의원들이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지만, 방송통신대 출신이라는 것이 선거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많다. 2005년 현재 방송통신대 21개 학과의 총 재학생은 약 18만명, 졸업생 수는 35만명에 달한다. 단순 계산으로만 50만명이 넘는 동문들이 있는 방송통신대와의 인연이 자신의 정치적 행보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이다.

다음으로 의정 활동에 필요한 공부를 하기 위해 방송통신대에 다니고 있는 경우다. 의원들이 선호하는 대표적인 학과는 중문과, 법학과, 경제학과다. 최근 정치·경제적으로 그 영향력이 증대되는 중국에 대해 공부하기 위해 입학하거나, 입법 기관으로서 법 지식을 쌓기 위해 법학과에 다시 들어가는 의원들이 많다. 송영길 의원은 “동북아시대에 걸맞는 정치인이 되기 위해 중국어와 일본어를 공부하기 위해 방송통신대에 다닌다”고 밝힌 바 있다.

그 밖에도 서민적인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서 또는 다양한 계층의 동문·학생들을 만나 현실 정치의 감각을 익히기 위해서, 개인적인 호감으로 방송통신대에 다니는 경우도 있다. 방송통신대 한 관계자는 “남경필 의원은 출석 수업을 통해 다양한 학생들을 만나 보더니 ‘대한민국의 축소판을 보는 것 같다’고 말하더라”고 했다. 같은 당 최구식 의원은 경제학을 공부하고 싶은 개인적 이유 외에, 가정형편 때문에 방송통신대를 다녔던 누나의 영향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많은 의원들이 쉽게 방송통신대에 입학하지만 졸업하기가 결코 수월한 것은 아니다. 대학측은 “원격 수업을 진행하지만 깐깐한 학사관리와 바쁜 일정 때문에 의원들이 졸업장을 따기가 쉽지 않은 것 같다”고 했다. 열린우리당 조일현, 한나라당 심재철 의원은 네 차례 등록을 하지 못해 제적당했고, 열린우리당 박기춘 의원은 99년 자퇴했다. 정동영 통일부장관은 2000년 경제학과에 입학했지만 수업을 듣지 못하고 계속 휴학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방송통신대에 편입학한 한나라당 정문헌 의원은 “입법기관에 있지만 법학을 공부한 적이 없어 답답한 적이 있었다”면서 “의정활동을 더 잘 해보려고 등록은 했는데 솔직히 공부할 생각에 걱정이 앞선다”고 말했다. ‘의원들에게 방송통신대가 인기가 있는 것은 50만이라는 동문 때문 아니냐’고 묻자 정 의원은 “열심히 수업듣고 공부해서 졸업해야 동문들 사이에서 인정도 받고 개인적으로도 득이 되지, 이름만 걸어놓은 학생은 비난의 대상이 될 것”이라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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