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상세페이지

<칼럼>워드 어머니의 얼굴

기사입력 2006.04.08 21:47

SNS 공유하기

fa tw gp
  • ba
  • ka ks url

    900만원에 이르는 항공기 1등좌석, 5300만원짜리 고급 승용차, 하룻밤 숙박비 605만원의 고급 스위트룸, 최고급 신사복….

    그는 글자그대로 특급대우를 받았다. ‘4년간 2850만달러’라는 대박계약 선수답지 않게 벼룩시장에서 산 3달러짜리 티셔츠를 입고 다녀 ‘블루칼라 백만장자’로 불려온 그도 한국에서만은 예외였다.

    한국인 어머니와 미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한국계 미국인으로 미국 프로풋볼(NFL) 슈퍼볼 최우수선수(MVP)에 등극한 하인스 워드(30). 지난 3일 어머니의 나라에 온 그가 연일 열렬한 환영을 받고 있다. 각 기업체의 마케팅 경쟁을 촉발시켰는가 하면, 가는 곳마다 환영인파에 휩싸이고 있다. 그 역시 한국시민의 박수에 특유의 ‘살인미소’로 화답하고 있다.

    워드의 방한은 물론 외형적 환영물결 이상의 효과를 낳고 있다. 혼혈인에 대한 차별적 제도를 점검하는 계기를 만들고, 우리 국민의 외국인에 대한 뿌리깊은 거부정서와 의식을 깨우치는 시간으로 기능하고 있다. 세계화 개방화·다인종 다문화 추세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임에도 폐쇄적 단일민족론이 여전히 위세를 떨치고 배타적 국수주의와 피부색 쇄국주의 잔재들이 남아 있다는 성찰의 담론이 다시 부각되는 것은 만시지탄의 일이다.

    그러나 그녀는 웃지 않는다. 워드를 낳고 키워온 김영희(59)씨. 그녀의 굳은 표정에는 변화가 없다. 워드를 뜨겁게 맞이하는 시민의 환호에도, 아들의 순진한 미소에도 어머니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가는 곳마다 카메라 플래시를 받는 외아들 곁을 묵묵히 지키고 있을 뿐이다. 고통의 시간들이 연상되는 것일까. 기나긴 간난의 세월이 어머니의 웃음을 통째로 앗아간 버린 걸까. 그녀에겐 아직 눈물이 남아 있었다. 동병상련의 처지에 있는 혼혈아 어머니들을 만난 자리에서 끝내 눈물을 훔치고 말았다.

    “한국 사람 안 쳐다보고, 생각 안하고 살아온 30년이었어. 내가 워드 데리고 한국 왔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아마 그놈 거지밖에 안 됐겠지? 여기선 누가 파출부라도 시켜줬을까.… 이제 와서 우리 워드가 유명해지니 관심을 참 많이 가져준다. 좀 그래, 부담스럽지 뭐, 세상 사는게 다 그런 거 아니겠어?미국에 한국 사람들은 말이야, 좀 그렇지. 미국에서도 한국사람들끼리 사이가 좋지 않잖아.이민 온 사람들도 우리들을 무시하고, 피부색깔도 같은 한국사람들끼리 인종을 더 차별하잖아. 내가 그렇게나 힘들어할 때는 도와주지 않더니, 이제 와서 우리 워드가 유명해지니….”

    계속되는 그녀의 한(恨)어린 토로는 듣는 이들의 목을 메게 한다. 이쯤되면 말문이 막힌다. 우리네 보통 어머니들이 겪어온 간난에 몇곱절쯤 더해졌을 것 같은 김영희씨의 파란만장한 세월을 떠오르게 하고, 인고의 시간들을 이겨낸 한 여인이 한국사회에 던지는 한국인 의식의 ‘이중성’에 대한 처절한 고발장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동시에 오늘의 우리에게 묻는 것 같기도 하다. 우리는 얼마나 ‘나보다 낮은 이웃’을 돌아보며 살고 있을까? 외국인, 혼혈인, 장애인, 여성, 빈자(貧者), 노약자 등…. 강자 아닌 약자에 대한 우리 마음속의 차별과 장벽은 진정 없는 것일까?

    아들 워드는 ‘어머니와의 약속(Promise to Mother)’을 이행중이다.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와 자신이 태어난 한국으로의 여행, 그것은 한많은 어머니에 대한 성공한 아들의 보상이자 보답일 수 있다. 고국과 고국민의 차별행태에 수만번의 눈물도 삼켜야 했을 워드 어머니에 대해 한국사회와 우리는 무엇으로 보상할 수 있을 것인가. 각 기업들이 보여주는 장삿속 특전은 일회성일 뿐이다. 차별해소를 위한 정부의 대책 마련 움직임이나 언론의 의식개혁캠페인도 표피적이고 냄비적이서도 안 된다. 차별의 제도와 의식을 개혁하고 계몽하는 처절한 계기로 삼아야 한다. ‘열린 공존의 사회’를 앞당기기위하여….
     

    backward top ho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