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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論>양극화라는 ‘악성코드’

기사입력 2006.04.08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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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팸메일 공세가 좀 수그러드나 했더니 요즘에는 ‘악성코드’라는 게 골치다. 컴퓨터 프로그램을 감염시키는 바이러스에 더해 애드웨어, 스파이웨어 같은 다양한 종(種)이 수시로 침투한다. 제멋대로 팝업 광고를 띄우고 개인정보를 빼가기도 하니 방관할 수만도 없는 일이다.

    다행히 무료로 설치하는 악성코드 퇴치 프로그램들이 많이 나와 있다. 그런데 이게 또 꽤나 귀찮게 군다. 프로그램 몇 개를 깔아두었더니 컴퓨터를 켤 때마다 ‘악성코드가 감지되었는데 치료하겠느냐’는 메시지가 뜬다. 확인 버튼을 누르면 수십개의 코드를 잡아내고는 ‘결제하겠느냐’고 묻는데, 결제하고서도 뒷맛이 개운치 않다. 정말 치명적인 코드였는지, 매번 이렇게 돈을 내야 하는지 판단할 근거가 없어서다.

    그러던 중 한 퇴치 프로그램 운영자에게서 희한한 얘기를 들었다. 숱하게 나와 있는 퇴치 프로그램 가운데 상당수는 있지도 않은, 혹은 별 문제가 없는 것들을 악성코드라면서 잡아내는 척 하는가 하면, 심지어 수거용 악성코드를 미리 깔아놓기까지 한다는 것이다. 퇴치 프로그램끼리 서로 악성코드로 분류해 공격하는 일도 잦다고 한다. 그러면서 각기 경쟁하듯 악성코드가 발견됐다고 ‘위협’해대니 “악성코드 퇴치 프로그램이야말로 악성코드”라는 불만이 쏟아진다는 것이다.

    비슷한 상황이 현실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이젠 초등학생까지도 예사로 들먹이는 ‘양극화’가 논란의 중심이다.

    양극화 현상이 악성코드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컴퓨터의 악성코드가 정상적인 프로그램의 흐름을 막듯이, 양극화는 사회 구성원의 의욕을 떨어뜨리고 사회발전에 걸림돌이 된다. 문제는 대대적인 위기경보를 울릴 만큼 분초를 다투는 치명적 현상인지, 그리고 퇴치 프로그램은 제대로 작동하는지의 여부다.

    노무현 대통령이 1월18일 신년연설에서 우리 사회 양극화 문제의 심각성을 본격 제기한 이후 양극화 의제는 자기복제를 거듭하며 수많은 변종들을 만들어냈다. 소득, 부동산, 교육, 고용, 건강 문제 등으로 그 스펙트럼이 확대되면서 모든 사안을 둘로 쪼개보는 관점이 관가의 유행이 된 지 오래다.

    원래 이런 문제는 고통을 받는 쪽이 정부의 책임론을 제기하며 항변하는 게 상식이다. 그런데 정부가 먼저 나서서 ‘당신들이 양극화의 피해자’라는 식으로 선동하 듯 공론화하니 전후 맥락이 어째 이상하다.

    참여정부부터가 양극화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이 정부는 양극화의 원죄를 외환위기로 치부하지만 2003년 이후에도 소득격차는 더 벌어졌다. 2002년말 이후 3년새 강남지역 아파트 값은 강북보다 7~8배가 더 올라 ‘강남(을 챙겨준) 대통령’이라는 비아냥을 듣는 판이다. 강남 수혜자 중에는 이 정부의 고위공직자도 다수다. 평준화 공교육을 고집하다가 고액과외를 못하는 중산층·서민층 자녀의 명문대 입학 기회를 더 줄여온 참여정부다.

    양극화는 경쟁을 다투는 시장경제 체제에서 어느 정도 불가피하다. 정부도 인정하듯 세계적인 추세이기도 하다. 그 정도가 지나치면 사회불안을 부르지만 우리의 경우 통계상 외국에 비해 특히 심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부처가 경쟁하듯 양극화 양상을 부각시켜 대책들을 쏟아내는 바람에 혼란스럽기 그지 없다.

    3일 서울대 한국정책지식센터가 주최한 ‘양극화 대책’ 포럼에서도 서울대 교수들은 정부 당국자에게 “메뉴는 많지만 초점이 없고, 대책 가운데는 서로 모순되는 것도 있다”고 꼬집었다. 퇴치 프로그램끼리 충돌하는 양상도 나오고 있는 것이다.

    사이버 세상에서는 하루에도 수십종의 악성코드가 새로 등장하지만 100% 퇴치는 불가능하다고 한다. 사회의 양극화도 마찬가지다. 한 쪽의 몫을 떼어 다른 쪽에 주는 식은 빈곤의 평준화를 부를 뿐이다. 성장기에 양극화가 주춤했다는 삼성경제연구소의 실증분석은 그래서 시사적이다.

    지금 국민은 갑자기 악성코드가 발견되었다는 비상경보와 함께 그것의 퇴치를 위해 결제, 즉 세금을 더 낼 용의가 있느냐는 질문을 받고 당혹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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