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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 출신 근원 구철우(具哲祐) 선생의 작품 세계

기사입력 2020.05.11 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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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능주 소재 화순예술인촌 전시실 상설 전시... 단아한 행서ㆍ매화 일품

    1960년에 국전 초대 작가... 1973년 조선대학교 서예 강사

    한국동란 당시 자택서 5년동안 매일 800자씩 쓰면서 개성적 필법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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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은 돈이 아니다.”

    일생동안 한 번도 개인전을 하지 않고 망국의 한을 예술로 승화시킨 서예가의 선비 근원 구철우(1904~1989) 선생을 두고 한 말이다.

    현재 구철우 선생 작품이 능주 소재 화순예술인촌 전시실에서 상설 전시중에 있다.

    서예와 사군자로 평생을 일관한 구철우 선생은 ‘예술은 돈이 아니다’라는 확고한 신념에서 일생동안 한 번도 개인전을 하지 않았고 그의 삶에 대한 자취를 남기는 것도 거부한 청빈한 예술가였다.

    구철우 선생은 화순군 한천면 정리 501에서 부농의 외아들로 태어나 1924년 서울 배재 학당을 거쳐 중동 학교 3학년을 다니던 중 고향으로 돌아온 후 1928년에 광주 동구 대인동으로 거처를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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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소 따르고 섬겼던 의재 허백련의 문하에 들어가 1938년에 연진회(鍊眞會) 회원으로 활동했다.

    1938년 허백련이 전통 서화가 양성을 목적으로 설립한 연진회의 주요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소전(素筌) 손재형(孫在馨) 같은 유명 서화가들과 친분을 맺었다.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자택에서 5년 동안 매일 800자씩 글씨를 쓰면서 개성적 필법을 완성했다. 단아한 행서에 뛰어났으며, 사군자 중에서는 매화가 일품이었다.

    1956년 이후 국전 서예부 특선을 연속 4회 수상하고 1960년에 국전 초대 작가가 됐다. 1961년에 전라남도 문화상을 수상하고, 1972년 제20회 국전 심사 위원을 역임했다.

    1973년 조선대학교 서예 초청 강사로 활동하며, 1975년 한국 예술원 원로 작가로 추대됐다. 

    1978년 연진 미술원 원장직을 맡아 후진 양성에 힘썼고, 1988년 ‘한국 서예 100년전’에 출품한 후 국전과 전라남도 도전 심사 위원장을 역임했다.

    연진원은 광주농업기술학교를 바꾸어 1978년 2월 10월 개원한 미술교육기관으로 보통과와 전문과로 나누어 사군자와 습자는 물론 국어, 국사, 기초 한문 등의 교양과목도 가르쳤다.

    구철우 선생의 제자들 모임으로 근묵회(槿墨會)가 있어 근원 구철우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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