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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도전' 심재용 광주시청 육상감독

기사입력 2005.04.27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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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척박한 현실과 설움 딛고 단거리 왕국 구축
    아파트 팔아 선수 스카우트…시민대상 수상

    스포츠에 있어서 유능한 '지도자'는 어머니처럼 사랑과 희생 정신을 필요로 한다. 명 지도자의 사랑은 제자의 생명을 존속시키고 험한 항로를 개척해 주는 힘을 지닌다. 세상(경기)에 나아갔다가 지치고 상처 입은 선수들은 어머니 같은 지도자의 품에서 위안을 받아야만 비로서 힘을 얻게 되는 것이며, 어머니의 거룩하고 한량없는 사랑에 필적할 수 있는 건 오직 사랑과 희생정신을 꼽는다.
    여기서 잠깐! 제자 사랑과 광주 육상 발전에 모든 걸 쏟아 부은 빛고을 최고 지도자가 있다. 옆으로 찢어진 눈, 짧은 목. 첫 인상이 꼭 격투기 선수같다. 그래서 그가 10여년전 육상 감독으로 명함을 내밀 당시, 그를 잘 모르던 체육인들 사이에선 "조폭 출신 아니냐”는 말도 나돌았다.
    방황을 끝내고 무명용사들과 변방에서 잡초처럼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심재용 감독(47). 그는 생김새만큼이나 ‘뚝배기’ 같은 육상을 고집한 끝에, 광주시청 육상을 반석위에 올려놓았다. 뚝배기 안에 담긴 것은 자율과 신뢰였다. 자기도취형도 아니고 애정결핍형도 아니다. 그는 오직 '1등 광주 육상'을 위해 자율과 신뢰를 바탕으로 희생과 봉사를 생활신조로 삼고 있다. 조실부모하고 방황했던 시절 눈물께나 삼켰다. 어깨에 힘들어 가던 청소년시절 지역 최대 폭력조직인 국제PJ파로부터 유혹의 손길을 받아 잠시 서울로 바람 쐬러 가기도했던 그가 천직인 육상계로 컴백 빛고을 육상계를 아우르고 있는 모습에 체육인 모두가 찬사를 보내고 있다. 고교시절 장래가 촉망됐던 기대주에서 이젠 명조련사로 이름을 떨치고 있는 심재용 감독. 부인과 상의 끝에 살고 있던 32평 아파트 한채를 8천만원에 처분해 선수 스카우트 비용으로 써버리고 임대 아파트로 옮겼어도 후회는 없단다. 이형근 박태경 등 제자들이 쭉쭉 잘 뻗어 가고 있어 오히려 행복함을 느낀다는 심 감독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조명해 본다. 

    '한국 허들의 희망' 박태경 조련 '스포트라이트'
    "다시 태어나도 체육인으로 살고파"

    ☞ 여수 묘도가 고향이다
    여수(구 여천) 묘도 1026번지에서 어부의 막내 아들로 태어났다.
    GS칼테스(구 호남정유) 앞 외딴 섬이 고향이라 어릴적부터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꿈을 키워 왔다.
    3남2녀중 막내로 태어나 사춘기 때인 중학교 시절 갑작스런 아버지의 운명으로 삶이 팍팍해 지기 시작했다.
    성격은 쾌활한 편이었으나 불의엔 가만있질 못했다. 정의감이 더 앞섰다고 할까.
    지금도 화가 치밀땐 쌍시옷 발음이 그대로 튀어 나온다.
    광주체고 시절 성격이 삐닥해 파출소를 자주 들락거렸다. 그 때마다 최병량 선생(광주시교육청 보건체육과장)이 꺼내줘 지금도 부모님 이상으로 모시고 있다.

    ☞ 여수 삼일중 때 육상 입문

    초등학교 시절 배구선수로 뛰다 삼일중으로 진학해 육상에 입문했다.
    그 때 만난 은사가 최병량 선생이다. 이후 광주체고로 진학, 말썽꾸러기로 전락했다.
    유도ㆍ레슬링부와의 잦은 시비로 파출소에 출석부가 있을 정도였다. 사고 쳤다는 전갈은 맨 처음 최병량 선생에게 전달 돼 최선생은 매번 여수에서 광주로 급히 달려와 사건처리 도맡아 해 주고 용돈까지 손에 쥐어 주고 가셨다. 정말 철 없었음을 느낀다.
    장재근보다 잘 달려 장래가 촉망되었으나 고 3 때 어머니까지 운명, 모든걸 자포자기 하고 있을 때 조폭세계에서 스카우트 손길이 뻗쳐와 잠시 바람 쐬러 서울행 고속버스에 몸을 싣기도 했다.
        
    ☞ 최병량 선생 도움으로 귀향
    철 없던 나를 끝까지 구해 준 분은 역시 최병량 선생이다.
    주먹 하나만으로 살아 가려던 철없던 나에게 모든걸 잊게해 주려고 소년체전 전남대표팀 코치직을 맡겨 주셨다. 지도자로서 첫 발을 내디딘 셈이다.
    이후 이름 없는 별들이 뭉친 광주시 건설본부 육상 감독으로 취임 정식 급료를 받게 됐다. 그러던중 IMF가 터져 구조조정으로 인해 광주시청으로 소속이 바뀌었다. 화가 복된 셈이다.
    광주시청이라는 간판 이래 육상부는 또다시 출항의 닻을 올렸으나 쓸만한 선수가 한 명도 없어 유명무실한 실업팀으로 전락해 갔다.
    내일을 위해 우선 살고 있던 32평짜리 아파트를 8천만원에 처분, 선수 스카우트에 나섰다.
    당시 상무에 있던 전남소속 이형근 선수(현 광주체고 교사)를 스카우트 하기 위해 강방원 전남육련 회장이 있는 목포를 수십차례 찾아가 눈물로 읍소한 끝에 이형근 선수를 데려오는 데 성공했다.
    이후 '한국 허들의 희망' 박태경 까지 확보해 오늘에 이르렀다.

    ☞ 광주시민 대상 수상
    아파트 처분하고 남은 돈으로 박태경 선수를 잘 먹였다. 박태경의 식욕은 이루 말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앉은 자리에서 생고기 3인분에 비빔밥 한 그릇은 기본으로 먹고 숙소에 들어가 피자 한판에 공기밥은 덤으로 먹어 치웠다. 돈이 문제가 아니었다.
    잘 먹은 탓이었는 지 이형근과 박태경을 앞세운 광주시청은 가는 곳 마다 기록경신으로 보람된 나날이었다.
    그러한 공로가 인정돼 2003년 체육부문 광주시민 대상을 받았다.
    더 잘하라는 채찍으로 알고 있다. 다시 한번 고마움을 느낀다.
     
    ☞ 다시 태어나도 체육인으로
    IMF 때 온통 나라가 엉망이었지만 되레 나에겐 전환점이 되었듯 다시 태어나도 체육인으로 살고 싶다. 엊그제 대한육련 간부들이 참석한 만찬자리에서 김용환 시 관광체육국장이 보내주신 배려의 말씀은 두고두고 잊을 수가 없다. 그날 감사의 말씀 덕분에 월간지(육상 월드) 표지 모델이 될 것 같다.
    아무튼 현재에 만족치 않고 선수들과 주어진 여건속에서 계속 호흡을 함께 할 생각이다.
    '1등 광주 육상' 을 위해 묵묵히 열과 성을 다할 생각임을 다시 한번 밝힌다.


    심재용은 누구
    ▲ 생년월일= 1959년 7월5일
    ▲ 체격= 173㎝ 80㎏
    ▲ 혈액형= O형
    ▲ 학력= 여천묘도초등-여천삼일중-광주체고
    ▲ 가족관계= 부인 김미숙씨와의 사이에 1남(주형)
    ▲ 주요경력= 현) 광주육련 전무이사, 광주시청 육상부 감독
    ▲ 주요수상= 광주시민대상 체육부문(2003), 대한체육회 최우수 감독상(2004)
    ▲ 주량= 폭탄주 한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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